중에서 특히 북한은 친족들이 모여 장례나 제사의식을 치르는 것을 물자의 낭비, 음식은 친적 이나 이웃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쌀 및 부식물로 간소하게 기념하는 정도로 차려진다고 한다. 매장은 해당 면소재의 지정 공동묘지에서 이루어지는데 북한도 최근 묘지난을 겪고 있다. 제례음식은 물자의 부족으로 대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쌀, 봉건잔재, 다만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회갑잔치의 경우 공식적으로 금지해왔지만 주민들은 몰래 치러왔는데, 1961년 김일성이“60 청춘 90 환갑”이라는 교시를 내린 후부터 사라졌다. 북한의 장례는 사회주의 생활방식에 따라 간소화되어 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시 부활하여 당국의 묵인 아래 치러지고, 한식, 술이 배급된다. 게다가 최근 김일성의 3년 탈상제가 강조되면서 기존의 제례행위에 대한 갖가지 규제는 무의미해졌다. 장례는 3일장이 거의 없으며 보통 1~2일장을 하는데 그것도 요즈음은 경제난으로 당일날로 치루는 것으로 관행화 되어 있다. 그러나 ......
의례생활
의례생활에 대한 자료입니다. 북한여성에대한모든자
(1) 장례 및 제례의식
가정의례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느 한 가족에 정서적·혈연적 귀속의식을 갖게 하는 가정생활의 핵심이다. 북한에서 전통적인 가정의례는 사회주의적 생활양식 정착에 장애가 되는 봉건적 잔재라 하여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규제되었다. 이 중에서 특히 북한은 친족들이 모여 장례나 제사의식을 치르는 것을 물자의 낭비, 봉건잔재, 종파주의나 분파주의 조성 등의 이유를 들어 규제했었다.
60년대 말경까지는 문중 차원의 확대 제사는 규제했지만 직계존속에 대한 제사는 전통적 방식으로 하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그런데 이것도 1974년 전국농업대회에서 김일성이 소위‘사회주의적 제사’방식을 제기함에 따라 변질되어 나갔다.26) 그 결과 추석성묘와 직계가족의 탈상제 정도는 묵인하지만 전통적인 유교적 제례방식과달리 변질된 내용의 제례가 일반화되었다. 그것도 음력명절, 한식, 추석 등 전통명절을 무시하면서 기제사 정도로 치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전통명절들이 부활되면서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 기념하는 것이 다시 활성화되었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게다가 최근 김일성의 3년 탈상제가 강조되면서 기존의 제례행위에 대한 갖가지 규제는 무의미해졌다.
제례음식은 물자의 부족으로 대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성의껏 힘닿는 범위 내에서 마련한다고 한다.
제례 시에는 축문을 읽거나 큰절을 하지 않고 다만 서서 묵념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장례식 때 문상객들이 부의금을 내고 두 번 절하고 맏상주가 곡을 하는 식의 전통적 의례방식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장례는 3일장이 거의 없으며 보통 1~2일장을 하는데 그것도 요즈음은 경제난으로 당일날로 치루는 것으로 관행화 되어 있다. 시신은 일반주민들의 경우 나무판자에 시신을 뉘고 헝겊으로 싸는 것으로 관을 대신한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상여를 썼지만 요즈음은 소달구지나 트럭으로 운구 하며 장지는 거주지 주위의 지정된 묘지를 쓰고 화장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회갑잔치의 경우 공식적으로 금지해왔지만 주민들은 몰래 치러왔는데, 1961년 김일성이“60 청춘 90 환갑”이라는 교시를 내린 후부터 사라졌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시 부활하여 당국의 묵인 아래 치러지고, 음식은 친적 이나 이웃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쌀 및 부식물로 간소하게 기념하는 정도로 차려진다고 한다. 돌잔치도 아직 잔존하는데, 다만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북한의 장례는 사회주의 생활방식에 따라 간소화되어 있다.
일체의 종교적 의식은 거부되고 양초·향도 사용되지 않는다.
기간은 3일장이 일반화되고 있으나 1일장이나 2일장이 권장되고 있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는 녹화사업소나 편의협동조합에서 맡아 처리해 주며 농촌에서는 협동농장에서 함께 치러준다. 상복은 따로 없고 남자는 팔에 상장이나 검은 천을 두르고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단다. 운구는 전래의 상여 대신 트럭이나 달구지 등으로 하며 운구시 곡은 금지되어 있다.
매장은 해당 면소재의 지정 공동묘지에서 이루어지는데 북한도 최근 묘지난을 겪고 있다. 직계존속 사망시 상주에게는 3일간의 휴가와 약간의 장례보조금, 쌀, 술이 배급된다.
간부가 사망했을 때는 장의위원회가 조직되며 수많은 주민들과 학생들이 동원되어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비석도 세워진다. 묘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 사용할 수 있고 개인이나 문중묘지 등은 일체
50년대까지만 해도 상여를 썼지만 요즈음은 소달구지나 트럭으로 운구 하며 장지는 거주지 주위의 지정된 묘지를 쓰고 화장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돌잔치도 아직 잔존하는데, 다만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상복은 따로 없고 남자는 팔에 상장이나 검은 천을 두르고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단.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그것도 음력명절, 한식, 추석 등 전통명절을 무시하면서 기제사 정도로 치러지게 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시 부활하여 당국의 묵인 아래 치러지고, 음식은 친적 이나 이웃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쌀 및 부식물로 간소하게 기념하는 정도로 차려진다고 한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북한의 장례는 사회주의 생활방식에 따라 간소화되어 있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묘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 사용할 수 있고 개인이나 문중묘지 등은 일체.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그런데 이것도 1974년 전국농업대회에서 김일성이 소위‘사회주의적 제사’방식을 제기함에 따라 변질되어 나갔다. 이 중에서 특히 북한은 친족들이 모여 장례나 제사의식을 치르는 것을 물자의 낭비, 봉건잔재, 종파주의나 분파주의 조성 등의 이유를 들어 규제했었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26) 그 결과 추석성묘와 직계가족의 탈상제 정도는 묵인하지만 전통적인 유교적 제례방식과달리 변질된 내용의 제례가 일반화되었다. 상복은 따로 없고 남자는 팔에 상장이나 검은 천을 두르고 여자는 머리에 흰 리본을 단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는 녹화사업소나 편의협동조합에서 맡아 처리해 주며 농촌에서는 협동농장에서 함께 치러준다. 묘지는 지정된 공동묘지만 사용할 수 있고 개인이나 문중묘지 등은 일체. 돌잔치도 아직 잔존하는데, 다만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치러진다고 한다. 제례음식은 물자의 부족으로 대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성의껏 힘닿는 범위 내에서 마련한다고 한다.. 일체의 종교적 의식은 거부되고 양초·향도 사용되지 않는다.의례생활 의례생활에 대한 자료입니다. 북한에서 전통적인 가정의례는 사회주의적 생활양식 정착에 장애가 되는 봉건적 잔재라 하여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규제되었다. 그러나 장례식 때 문상객들이 부의금을 내고 두 번 절하고 맏상주가 곡을 하는 식의 전통적 의례방식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60년대 말경까지는 문중 차원의 확대 제사는 규제했지만 직계존속에 대한 제사는 전통적 방식으로 하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다시 부활하여 당국의 묵인 아래 치러지고, 음식은 친적 이나 이웃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주는 쌀 및 부식물로 간소하게 기념하는 정도로 차려진다고 한다. 제례음식은 물자의 부족으로 대개 격식을 차리지 않고, 성의껏 힘닿는 범위 내에서 마련한다고 한다. 제례 시에는 축문을 읽거나 큰절을 하지 않고 다만 서서 묵념을 한다고 한다. 시신은 일반주민들의 경우 나무판자에 시신을 뉘고 헝겊으로 싸는 것으로 관을 대신한다.의례생활 의례생활에 대한 자료입니다. 그것도 음력명절, 한식, 추석 등 전통명절을 무시하면서 기제사 정도로 치러지게 되었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북한에서 전통적인 가정의례는 사회주의적 생활양식 정착에 장애가 되는 봉건적 잔재라 하여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규제되었다. 그러나 장례식 때 문상객들이 부의금을 내고 두 번 절하고 맏상주가 곡을 하는 식의 전통적 의례방식은 아직 남아 있다고 한다. 직계존속 사망시 상주에게는 3일간의 휴가와 약간의 장례보조금, 쌀, 술이 배급된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장례는 3일장이 거의 없으며 보통 1~2일장을 하는데 그것도 요즈음은 경제난으로 당일날로 치루는 것으로 관행화 되어 있다. 기간은 3일장이 일반화되고 있으나 1일장이나 2일장이 권장되고 있다. 북한의 장례는 사회주의 생활방식에 따라 간소화되어 있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전통명절들이 부활되면서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 기념하는 것이 다시 활성화되었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시신은 일반주민들의 경우 나무판자에 시신을 뉘고 헝겊으로 싸는 것으로 관을 대신한다.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일체의 종교적 의식은 거부되고 양초·향도 사용되지 않는다. 장례는 3일장이 거의 없으며 보통 1~2일장을 하는데 그것도 요즈음은 경제난으로 당일날로 치루는 것으로 관행화 되어 있다. 운구는 전래의 상여 대신 트럭이나 달구지 등으로 하며 운구시 곡은 금지되어 있다. 제례 시에는 축문을 읽거나 큰절을 하지 않고 다만 서서 묵념을 한다고 한다. 기간은 3일장이 일반화되고 있으나 1일장이나 2일장이 권장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북한은 친족들이 모여 장례나 제사의식을 치르는 것을 물자의 낭비, 봉건잔재, 종파주의나 분파주의 조성 등의 이유를 들어 규제했었다. 매장은 해당 면소재의 지정 공동묘지에서 이루어지는데 북한도 최근 묘지난을 겪고 있다. 60년대 말경까지는 문중 차원의 확대 제사는 규제했지만 직계존속에 대한 제사는 전통적 방식으로 하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26) 그 결과 추석성묘와 직계가족의 탈상제 정도는 묵인하지만 전통적인 유교적 제례방식과달리 변질된 내용의 제례가 일반화되었다. 직계존속 사망시 상주에게는 3일간의 휴가와 약간의 장례보조금, 쌀, 술이 배급된다. 간부가 사망했을 때는 장의위원회가 조직되며 수많은 주민들과 학생들이 동원되어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비석도 세워진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게다가 최근 김일성의 3년 탈상제가 강조되면서 기존의 제례행위에 대한 갖가지 규제는 무의미해졌다. 회갑잔치의 경우 공식적으로 금지해왔지만 주민들은 몰래 치러왔는데, 1961년 김일성이“60 청춘 90 환갑”이라는 교시를 내린 후부터 사라졌다. 장례식과 매장은 도시의 경우는 녹화사업소나 편의협동조합에서 맡아 처리해 주며 농촌에서는 협동농장에서 함께 치러준다. 운구는 전래의 상여 대신 트럭이나 달구지 등으로 하며 운구시 곡은 금지되어 있다. 그런데 이것도 1974년 전국농업대회에서 김일성이 소위‘사회주의적 제사’방식을 제기함에 따라 변질되어 나갔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전통명절들이 부활되면서 죽은 사람의 무덤을 찾아가 기념하는 것이 다시 활성화되었다고 탈북자들은 전한다. 게다가 최근 김일성의 3년 탈상제가 강조되면서 기존의 제례행위에 대한 갖가지 규제는 무의미해졌다. 매장은 해당 면소재의 지정 공동묘지에서 이루어지는데 북한도 최근 묘지난을 겪고 있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상여를 썼지만 요즈음은 소달구지나 트럭으로 운구 하며 장지는 거주지 주위의 지정된 묘지를 쓰고 화장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례생활 다운로드 OO . 북한여성에대한모든자 (1) 장례 및 제례의식 가정의례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느 한 가족에 정서적·혈연적 귀속의식을 갖게 하는 가정생활의 핵심이다. 간부가 사망했을 때는 장의위원회가 조직되며 수많은 주민들과 학생들이 동원되어 성대한 장례식이 치러지고 비석도 세워진다. 회갑잔치의 경우 공식적으로 금지해왔지만 주민들은 몰래 치러왔는데, 1961년 김일성이“60 청춘 90 환갑”이라는 교시를 내린 후부터 사라졌다. 북한여성에대한모든자 (1) 장례 및 제례의식 가정의례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를 때까지 어느 한 가족에 정서적·혈연적 귀속의식을 갖게 하는 가정생활의 핵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