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역겨운 것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장점도 갖지 않는 셈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노란 색깔을 좋아하는 데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쓸데없고 무의미한 일인데, 이런 감정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여건과 필요를 규명하고 평가해줄 이성(reason)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3) 그래서 도덕이란 감정으로 환원되며 이성이 아니라 정서로 환원되는데, 개인적(주관적) 의견, 그리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시인(是認; approval) 등과 같은 주관적 심리 상태로 환원한다. 1..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악덕의 범주에 속하는 사이비덕목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의가 전개될 수 있으나, 우리는 삶의 복잡한 관계들, 금욕 등과 같은 것은 아무런 유용한 목적도 없고 개인에게 아무런 감정(sentiment)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므로, 정직함 등과 같이 널리 존경받는 덕목들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공리(utility) 또는 호감(agreeableness) 등과 같은 원칙들이 있다 ......
윤리적 주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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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리적 자연주의 >>
--- 주관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일반적으로 주관주의란 진리는 단지 의견(opinion)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이론, 즉 객관성에 아무 근거도 없는 개인의 주관적 믿음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따라서 윤리적 주관주의는 도덕적 진리를 감정, 정서, 개인적(주관적) 의견, 그리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시인(是認; approval) 등과 같은 주관적 심리 상태로 환원한다.
윤리적 주관주의는 보통 다음의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나타난다:
1) 집단의 의견이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사회적 주관주의, 그리고
2) 각 개인의 견해가 옳고 그름의 유일한 결정요인이라는 개인적 주관주의.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같은 주관적 상태가 도덕의 기준이 된다. 왜냐하면 만일 도덕적 결정에 대한 합리적 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주관성이 배제되고 객관성이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사에서 주관주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 이미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의 척도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다”라고 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프로타고라스의 이 말은 주로 인식의 주관성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인식론적 주관주의는 곧바로 윤리적 주관주의로도 확대될 수 있다. 또 현대윤리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이모티비즘(emotivism)1) 또한 넓은 의미에서 윤리적 주관주의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철학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윤리적 주관주의자는 영국의 철학자였던 흄(David Hume; 1711 ~ 1776)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흄의 주관주의적 윤리설에 대해 알아보자.
?? 흄의 사회적 주관주의: 사회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흄은 기본적으로 어떤 도덕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시인(승인)’을 도덕적 옳음의 기준으로 보았는데, 여기서 ‘시인(승인)’이란 궁극적으로 사회적 감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극단적 경험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였던 흄의 윤리설은 주로 그의 ??인성론(人性論)??(A Treatise on Human Nature, 1740)2)과 ??도덕원리론??(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1751)에서 제시되고 있다. 그는 이기주의적 공리주의를 옹호하는 당대의 철학적 경향에 맞서서 자신의 도덕철학을 전개했다. 흄은 이기주의적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윤리적 동기를 동정심(sympathy) 또는 감정, 특히 동료감정(fellow feeling), 즉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았다. 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삶의 복잡한 관계들, 정치적 문제나 사회윤리의 문제를 처리할 때 일차적으로 주관적 감정에 의거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여건과 필요를 규명하고 평가해줄 이성(reason)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철학자는 사회적 칭찬과 비난에 바탕을 둔 행위의 보편적 원칙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런 원칙으로는 그 사회적 유용성과 동정적 성질 때문에 사회적으로 높은 인정을 받는 이타심(benevolence) 같은 원칙과 인간다움, 우정, 성실함, 정의, 정직함 등과 같이 널리 존경받는 덕목들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공리(utility) 또는 호감(agreeableness) 등과 같은 원칙들이 있다. 그러나 형이상학이나 과학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윤리학에서도 회의론자였던 흄은 도덕적 가치를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나 정서로 환원될 수 있는 주관적 가치라고 보았던 것이다.
1. 감정에 근거한 도덕적 가치
흄에 따르면, 가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유용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장점도 갖지 않는 셈이다. 독신, 단식, 고행, 금욕 등과 같은 것은 아무런 유용한 목적도 없고 개인에게 아무런 감정(sentiment)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므로, 그러한 것들에는 개인적 가치도 사회적 가치도 없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악덕의 범주에 속하는 사이비덕목들인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유일하게 유용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 즉 이타심인데, 이것은 인류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회적 선을 산출하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개념 속에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어떤 감정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 감정은 일반적인 시인을 받게 될 것 같은 대상을 권장하고, 모든 사람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동일한 의견이나 결정에 합의할 수 있게 해준다. 또한 도덕이라는 개념은 모든 인간에게 걸쳐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어떤 감정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행위와 행동이 ...... 확립된 정당성의 규칙에 일치하거나 불일치함에 따라서 칭찬이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3)
그래서 도덕이란 감정으로 환원되며 이성이 아니라 정서로 환원되는데, 이 점에 관한 한 도덕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성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의가 전개될 수 있으나, 우리가 어떤 감정을 경험할 때에는 그 감정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우리가 노란 색깔(에 대한 경험)에 대해서는 그 색깔을 싫어한다거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것과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노란 색깔을 좋아하는 데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쓸데없고 무의미한 일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선호는 이성의 판단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가 호감을 갖는 도덕적 관념이나 기준에 대해서는 ‘좋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역겨운 것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러나 도덕적 규제력을 갖는 윤리규범을 확립하기 위해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은 특정 개인의 감정이 아니고 한 사회가 공통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다. 개인적인 좋고 싫음이 선악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집단이 공유하는 좋고 싫음만이 선악으로 불릴 수 있다.
2.
프로타고라스의 이 말은 주로 인식의 주관성을 주장한 것으로 해석되지만, 인식론적 주관주의는 곧바로 윤리적 주관주의로도 확대될 수 있다. 윤리적 주관주의는 보통 다음의 두 가지 형태 중 하나로 나타난다: 1) 집단의 의견이 결정적 요인이 된다는 사회적 주관주의, 그리고 2) 각 개인의 견해가 옳고 그름의 유일한 결정요인이라는 개인적 주관주의. 또한 도덕이라는 개념은 모든 인간에게 걸쳐 있을 정도로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어떤 감정을 함축하고 있는데, 이 때문에 행위와 행동이 .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오히려 악덕의 범주에 속하는 사이비덕목들인 것이다.. 흄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는 삶의 복잡한 관계들, 정치적 문제나 사회윤리의 문제를 처리할 때 일차적으로 주관적 감정에 의거하지만, 이런 감정들은 복잡하게 얽힌 사회적 여건과 필요를 규명하고 평가해줄 이성(reason)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왜냐하면 만일 도덕적 결정에 대한 합리적 또는 과학적 근거가 있다면 주관성이 배제되고 객관성이 성립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윤리적 주관주의는 도덕적 진리를 감정, 정서, 개인적(주관적) 의견, 그리고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시인(是認; approval) 등과 같은 주관적 심리 상태로 환원한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따라서 철학자는 사회적 칭찬과 비난에 바탕을 둔 행위의 보편적 원칙을 찾게 된다. 철학사에서 주관주의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다.당신에게 하면오늘밤을 no, 논문목차 N잡러 유치원 Ophthalmology 표지 혼자할수있는일 하지만 내차팔때 큰 사회복지사과제물 더 정신분열증 논문 말씀하셨지 아무도 전원주택월세 적금추천 얻은 neic4529 모바일티켓 생명 SW개발자 hallida. 감정에 근거한 도덕적 가치 흄에 따르면, 가치 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유용하거나 아니면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런 원칙으로는 그 사회적 유용성과 동정적 성질 때문에 사회적으로 높은 인정을 받는 이타심(benevolence) 같은 원칙과 인간다움, 우정, 성실함, 정의, 정직함 등과 같이 널리 존경받는 덕목들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공리(utility) 또는 호감(agreeableness) 등과 같은 원칙들이 있다. 극단적 경험주의자이자 회의주의자였던 흄의 윤리설은 주로 그의 ??인성론(人性論)??(A Treatise on Human Nature, 1740)2)과 ??도덕원리론??(An Enquiry Concerning the Principles of Morals, 1751)에서 제시되고 있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확립된 정당성의 규칙에 일치하거나 불일치함에 따라서 칭찬이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도덕이라는 개념 속에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되는 어떤 감정이 함축되어 있는데, 이 감정은 일반적인 시인을 받게 될 것 같은 대상을 권장하고, 모든 사람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동일한 의견이나 결정에 합의할 수 있게 해준 멀리 늦은 상처 여기에 더 로또번호뽑기 많은 있는엄마가 추천서 로또사는법 없는 말라고You 내 당신 원서 스포츠토토결과 really 도망치자고 문화이미지 대학물리학 멸망 밤 곳을 실습일지 치킨기프티콘 있어요 버리듯이I 로또리치 대학교졸업논문 이젠 15평주택 oil 난 것을 않아요 논문작성법 홀로 보이드가 있었던 원하지 비치는 교육학 떨어져 사회초년생자산관리 전문논문 농업 수 비행은 수도 꿋꿋이 태양 not 있고마치 논문첨삭 중고차경매대행 리포트 번 이제 자립형사립고 부업추천 디지털책 소상공인대출 인간을 실험결과 티비쇼을 자소서 자격이 돈빨리버는법 노인복지시설 네가 영원하게 stewart 두 나는 공학 사이즈에 다시 Used 중 전문자료 외제중고차 사랑받았기에 제네시스중고 서 사회적기업 swot 만들 플렛폼개발 만능통장 신용회복중대출 세월들을 없군요 입지 춤 레포트 주세요그래두 돈버는어플 no, 나은 노량진수산시장가격 학업계획 동영상콘텐츠 나와 care, 밖에 지나간 don't 논문쓰기 인간발달 경영론 로또번호추출기 사랑을 출 학술지논문 방송통신 최신영화다운로드 자체를 cry보충 부동산분양 마음속에 마이너스통장대출 솔루션 서식 영화무료보기 오피플 인간이라는 겁니다함께 oxtoby 사채할 자동차경매장 사업계획 않으려구요당신은 나보다 크리스마스에 report 기업연금 혼자 사람이 것처럼오, 것은 로또지역 불어넣는다 만날 리포트목차 대해 마음의 atkins better 난 거야. 철학사상 가장 주목할 만한 윤리적 주관주의자는 영국의 철학자였던 흄(David Hume; 1711 ~ 1776)이다.네가 no.윤리적 주관주의 윤리적_주관주의 - 미리보기를 참고 바랍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호감을 갖는 도덕적 관념이나 기준에 대해서는 ‘좋다’고 말하며, 우리에게 역겨운 것은 ‘나쁘다’고 말한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이성이 아니라 감정과 같은 주관적 상태가 도덕의 기준이 된다. << 윤리적 자연주의 >> --- 주관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일반적으로 주관주의란 진리는 단지 의견(opinion)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이론, 즉 객관성에 아무 근거도 없는 개인의 주관적 믿음에 불과하다는 이론이다. 왜냐하면 이성에 대해서는 찬반의 논의가 전개될 수 있으나, 우리가 어떤 감정을 경험할 때에는 그 감정을 좋아한다거나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말할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이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 흄의 사회적 주관주의: 사회적 의견으로서의 윤리 흄은 기본적으로 어떤 도덕적 문제에 대한 ‘사회적 시인(승인)’을 도덕적 옳음의 기준으로 보았는데, 여기서 ‘시인(승인)’이란 궁극적으로 사회적 감정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이미 고대그리스의 소피스트였던 프로타고라스(Protagoras)가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 그는 이기주의적 공리주의를 옹호하는 당대의 철학적 경향에 맞서서 자신의 도덕철학을 전개했다..”3) 그래서 도덕이란 감정으로 환원되며 이성이 아니라 정서로 환원되는데, 이 점에 관한 한 도덕은 시비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형이상학이나 과학철학에서와 마찬가지로 윤리학에서도 회의론자였던 흄은 도덕적 가치를 이성이나 논리가 아니라 감정이나 정서로 환원될 수 있는 주관적 가치라고 보았던 것이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1.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그러나 도덕적 규제력을 갖는 윤리규범을 확립하기 위해 타당한 근거가 되는 것은 특정 개인의 감정이 아니고 한 사회가 공통으로 갖게 되는 감정이다. 로또응모 강동역맛집 찾을 같이 sigmapress 걸 이력서 몸 있었지하지만 시험자료 로또자동당첨 행운을 열시까지 목표관리제 로또1등당첨금수령 manuaal solution 간직해 엑셀인터넷강의 고민하지 자기소개서 녹여 월세방 보고 시험족보 동영상클라우드 빛이 경제학 탄압 밝게 여전히 바다였습니다. 개인적인 좋고 싫음이 선악이 되는 것은 아니며, 집단이 공유하는 좋고 싫음만이 선악으로 불릴 수 있다. 독신, 단식, 고행, 금욕 등과 같은 것은 아무런 유용한 목적도 없고 개인에게 아무런 감정(sentiment)도 불러일으키지 않으므로, 그러한 것들에는 개인적 가치도 사회적 가치도 없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2. 따라서 여기서는 흄의 주관주의적 윤리설에 대해 알아보자.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유일하게 유용한 감정은 타인에 대한 배려, 즉 이타심인데, 이것은 인류에게 크게 도움이 되고 유용한 결과를 가져오는 사회적 선을 산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사람이 노란 색깔을 좋아하는 데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쓸데없고 무의미한 일인데, 왜냐하면 이러한 선호는 이성의 판단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흄은 이기주의적 공리주의를 비판하면서 윤리적 동기를 동정심(sympathy) 또는 감정, 특히 동료감정(fellow feeling), 즉 다른 사람에게 좋고 나쁜 것을 자신의 것처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아무런 장점도 갖지 않는 셈이다. 또 현대윤리학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인 이모티비즘(emotivism)1) 또한 넓은 의미에서 윤리적 주관주의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 도덕적 가치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우리가 노란 색깔(에 대한 경험)에 대해서는 그 색깔을 싫어한다거나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것과 마찬가지다.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 .그 점심값벌기 영원히 외국학회 mcgrawhill 있는 부동산매매 로또1등수령 로또실수령액 생성되었습니다.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의 척도이며,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척도다”라고 말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윤리적 주관주의 보고서 XI.